<초속 5센티미터>를 두번째 보다.
영화를 두번이나 보면서 머리 속을 맴돌던 생각들이 막상 활자가 되어 나오지를 않는다. 이것도 병이다.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난 이 영화를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에 대한 영화라고 짧게 평했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것. 그 설레임과 두려움에 대한 감정, 좋아하기에 상처받고 좋아하기에 상처주고, 그 뒤에 남는 그리움과 미련 그리고 쓸쓸함에 관한 이야기.
처음 사랑에서 '영원'을 느꼈다던 주인공은 결국 그 영원 때문에 다음 사랑에서 만족을 못 느꼈는지 모른다. 남자의 시점에서 서술되는 이 이야기는 여자 역시 '영원'의 감정을 느꼈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그러나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항상 상호적이지만은 않은 법이니까...
다만 이 영화를 보면서 내 머리 속을 맴도는 잔상에 대해 생각할 뿐이다.
이 영화를 두번째 본 시점에서 느낀 점은 앞서 느꼈던 그 좋아한다는 감정이 실은 '인연'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이는 전적으로 요즘 읽고있는 <장정일의 독서일기 7>에서 장정일이 인용한 '피천득'선생의 "인연"에 대한 글 때문이다.
저자(피천득)는 표제작이 된 작품(인연因緣)에서 '마음에 그리움이 남아있는 상태'를 인연이라고 규정하는 듯하다.
<중략>
아사코를 사랑했던 피천득 선생이나 중국 유학생을 사랑했던 주요섭의 예에서 보듯이. 인연은 혼자 만들 수 없다. '나와 너의 만남'이 모든 인연의 시작이다. 하지만 가장 아름답고 비극적인 인연은, 인연의 불가능 속에서 홀로 된 자신과 대면한다. 너를 애틋하게 생각하는 내 마음이 씨앗이 되고, 불가능성이 거름이 되어, 이윽고 너와 나를 다시 태어날 내생來生의 환희 속으로 밀어내는게 인연이다. 아예 연을 맺지 말라는 불가의 가르침도 있지만, 인연은 우리를 불행하게 하는 한편, 또 다른 약속으로 이끈다.
- <장정일의 독서일기 7> p 231~232 中
'사랑'을 '인연'으로 그리고 그 '인연'을 '마음에 그리움이 남아있는 상태'로 이해하면 영화 속 남자의 행동들을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의 그 미소 또한 이해할 수 있게된다. 그는 위의 글에서 장정일이 말한 바와 같이 그제서야 홀로 된 자신과 마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가 다른 인연을 맺게 될 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이후 그의 삶 속에서 쓸쓸함이 좀 다른 의미가 되었을거라고 ,그리고 그 결론이 또 다른 길로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마음에 그리움이 남아있는 상태' 정말 명료한 정의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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