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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6/16 기억과 망각에 대하여 - 이터널 선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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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rybody's Gotta Learn Sometimes / Beck
 
"망각한 자는 복이 있나니, 자신의 실수조차 잊기 때문이라 (Blessed are the forgetful, for they get the better even of their blunders)"

  짐 캐리, 케이트 윈슬렛이 주연한 영화 "이터널 선샤인"에 인용된 니체의 격언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 '조엘'과 '클레멘타인'은 많은 부분 서로 소통하고 있으며, 또 많은 부분 소통하지 못하는 평범한 연인들이다.
  사귄지 2년이 지나 처음 만남의 설레임도 사라지고, 이젠 너무나 잘 아는 서로의 단점에 지치기도 한다.그들은 만나고 헤어지고 사랑하고 다투고 화해하는, 다른 많은 연인중의 하나일 뿐이다.

  그러나 이 연인에겐 한가지 다른 점이 있는데, 그건 이 연인들의 세계에는 선택된 기억만을 지워주는 회사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여자친구가 자신의 기억을 지웠다는데 격분하여 자신도 여자친구의 기억을 지우기로 결심한 조엘은 망각의 여행을 떠난다. 기억을 지우기 위해선 그와 관련된 기억을 다시 꺼내야만 한다. 우리(관객)는 조엘과 함께 그들이 헤어지는 순간부터 처음 만나는 순간까지 그들의 연애를 역순으로 탐방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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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영화는 사랑과 기억과 망각에 대해 다루고 있다. 누구나 지나간 기억들로 힘에 겨울 때, 그 기억을 지우고자하는 욕망이 있었을 것이다. 이 영화는 그러한 욕망이 실재화 됐을 때, '과연 우리는 행복할 수 있는가?'라고 질문한다. 대답은 각자의 몫일 테지만, 난 조엘의 여정에 동참하면서 '그렇지 않다'라고 대답하였으며, 조엘과 마찬가지로 아파했다.

  기억이 나지않는다면 슬퍼할 일도 없을 것이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 날씨가 춥다해서 걱정할 필요도,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아쉬워 할 일도, 종로거리를 걸으면서 순간순간 상념에 잠기는 일도, 때때로 혼자임을 생각하며 지독히 외로워 할 일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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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빙판길을 볼때면, 잘 넘어지곤 했던 그애 생각을 하며 미소짓는 순간도, 전재산을 털어 산 김밥 두줄에 행복했던 순간도, 서로의 체온을 느끼며 행복했던 그 순간들도 모두 사라지게 될 것이다.  
  아픈 기억들과 함께 그 좋았던 모든 순간들에 대한 기억들 역시 사라지는 것이다. 나와 함께 시공간을 공유했던 한 존재의 소멸이란, 동시에 나의 소멸인 것이기도 하다. 존재의 소멸이 아프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인 '후르츠 바스켓'에도 망각과 관련된 에피소드 들이 있다. 이 애니에는 기억을 소멸시키는 능력을 지닌 캐릭터가 이 일을 수행한다.
  저주(이성이 안으면 동물로 변하는)받은 아이인 '모미지'는 자신을 거부하고 자신을 잊은 어머니를 멀리서 보면서 이렇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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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난 생각해.
    난 꼭 그 추억을 간직한 채 살아가고 싶다고...
    설령 그것이 슬픈 추억일지라도
    날 아프게 할 뿐인 추억일지라도.
    차라리 잊어버리고 싶다고 간절히 바라는 추억일지라도.
    잊지않고 간직한 채 도망치지 않고 노력하면...
    언젠가, 언젠가는,
    그런 추억에 지지않는 내가 될수 있다고 믿으니까...
    그렇게 믿고싶으니까.  
    잊어도 되는 추억같은건 하나도 없다고 믿고 싶으니까.
    난 이렇게 생각해.
    난 끝까지 추억으로 짊어지고 살아가고 싶다고...
    그래서 사실은 엄마도 잊지 않기를 바랬어.
    사실은. 노력해주길바랬어.  
    하지만 이건 내 욕심일 뿐이니까... 비밀이야"

"저도 ..      
저도 믿고있어요..      
어떤 추억이라도, 끝까지 이 가슴에 안고서..      
믿으며 살아가고 싶어요..      
잊어도 좋은 추억같은건..      
하나도 없다고.. 믿고 싶으니까..      
언젠가, 언젠가 지지않는 내가 될 수 있도록.      
그리고 언젠가, 그것마저도 극복해서.      
소중한 기억이 될 수 있도록..      
  믿어요.."  
 

 - 애니메이션 "후르츠 바스켓" 15화  '모미지'와 '토오루'의 대화

  망각이 축복이라는 건, 그것을 모두 잊기 때문이 아니라, 어느새 그 상처를 껴안을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잊어도 되는 추억은 없는 것이고, 언젠가 모두 소중한 기억으로 자리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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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터널 선샤인'은 아픈 기억을 잊는다 해서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는 것이 아님을, 또한 먹고 마시고 다투고 화해하는 소소한 일상의 기억들이 아주 소중한 추억임을 말해준다.
  감탄사가 나오는 '찰리 카우프만'의 놀라운 시나리오와 '짐 캐리'와 '케이트 윈슬렛' 그리고 조연으로 나온 '커스틴 던스트'의 뛰어난 연기. 거기에 잘 녹아든 엔딩테마까지 올해 건진 영화 중의 하나다.

  그러나 아직 봉인되지 않은 기억의 잔상이 남아있는 사람이라면, 이 영화는 아주 잔인할지도 모른다. 적어도 내겐 그랬다.

ps> 부작용이 생겼다. '봄날은 간다' 와 비슷한 증상인데, 기껏 갈무리해 둔 옛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고 있다. 오늘밤은 잠자기 힘들겠다. ^^

ps2> 이 영화 제목인 '이터널 선샤인'은 영화에도 인용된 알렉산더 포프가 쓴 <Eloisa to Abelard> 라는 시에서 따 온 것이라고 한다. 아래는 그 시의 일부다.

- 출처 : 깨어있을때 꿈을 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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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 2005.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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