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3 시절 <모래시계>를 통해 처음으로 접한 ‘광주’는 내게 ‘국가’의 존재에 대해 그리고 모순투성이의 한국사회에 대해 인식하게 된 결정적인 키워드였다.
‘어떻게 한 국가의 군인이 자국의 국민에게 총칼을 들이대고 살육할 수 있었을까?’라는 질문을 내게 던져주었으며, 그에 대한 탐구를 통해 ‘여순사건’을 ‘4.3항쟁’을 그리고 ‘80년대’와 ‘6월 항쟁’을 알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후로 난 국가와 민족의 이름으로 개인에게 가해지는 부당함에 대해 인식하게 외었고 그러한 거대담론에 대해 경계하게 되었다.
이것이 내가 ‘광주’란 이름 ‘5월’이란 말을 접할 때마다 느끼는 어떤 감정의 이유다.
서론이 길었던 것은 지금부터 내가 하게 될 <화려한 휴가>란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소위 말하는 ‘객관성’과는 떨어진 이야기일 수 있음을 밝혀두고 내가 느낀 생각들의 알리바이를 제공하기 위함이다.
<화려한 휴가>를 같이 본 사람들은 이 영화가 재미없고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고 하였다. 3명이서 본 영화를 그 중 2명이 별로라고 했으니 객관적인 측면에서 이 영화는 말 그대로 ‘별로’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흔히 영화를 판단하는 기준은 ‘재미’이다. 하지만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건, 이미 벌어진 사건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그것이 비극으로 끝난 사건을 다룬 작품에 대해 ‘재미’라는 단어가 적합한가 하는 것이다. 만약 그러한 작품이 ‘재미’있다 할지라도, ‘재미’란 단어를 써선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하지만 딱히 별다른 표현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럴 때 난 ‘좋은 영화’라는 표현을 쓰며, 내게 있어 이 영화는 아쉬움이 남긴 하지만 ‘좋은 영화’라고 판단한다.
<화려한 휴가>는 ‘광주’를 다룬 상업영화로는 3번째 영화라고 한다. 그 이전으로는 <꽃잎>과 <박하사탕>이 있었다. <꽃임>은 보지 않았으니 논외로 하고 그 이전에 나온 <박하사탕>과 <화려한 휴가>의 가장 큰 차이점은 시점과 시대일 것이다.
<박하사탕>은 광주의 사건 이후 20년 뒤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현대의 한 남자가 순수성을 잃고 파멸하게 된 계기를 20년 전 광주에서 찾는다. 광주에 계엄군으로 동원된 군인이었던 남자가 가지게 된 죄책감이 그를 포악한 사람으로 만든 결정적 이유라고 말한다. <박하사탕>의 그 남자는 ‘광주’를 희생양으로 삼았던 ‘대한민국’이란 국가의 알레고리다. 현대 한국의 포악함을 ‘광주’의 상처에서 찾았지만 이 영화는 어디까지나 후일담이며 가해자의 시선에서 본 죄책감일 뿐이다.
반면 <화려한 휴가>는 그 광주의 5월의 시간들을 정면에서 다루고 있으며, 그 시간을 살고 죽어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다. 피해자의 시점에서 그 당시를 조망하는 영화인 것이다. 그것이 이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이자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날 갑자기 자신들을 지켜준다고 믿었던 군인들이 자신의 아들,딸,부모,동생,친지들을 잡아가두고 패고 죽이는 상황이 발생한다. 그 때 그들은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이 영화는 그에 대해 어떤 결론을 제시하거나 의견을 표명하지 않는다. “우리는 폭도가 아니다.”라는 언명이 이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가장 큰 주제다.(만약 이 말이 ‘주장’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과는 따로 논의를 하기로 하자.) 이 영화는 그 때 그 곳 그 사람들의 행동과 시간을 표현하는데 주력한다. 판단은 관객의 몫이며, 그게 내가 이 영화를 지지하는 가장 큰 이유다.
이 영화의 약점 중 하나로 지적되는 것이 인물들의 전형성이다. 실화에 근거하긴 했지만 이 역시 이야기인 관계로 10여명의 주요 인물들을 서로 교차시키며 이야기를 전개한다. 때문에 한 사람이 동시에 여러 상황에 직면하기도 하고 때론 무리한 전개가 벌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10여일 간 한 도시에서 벌어진 사건들을 2시간이란 분량으로 압축시켜 전개하고자 할 때, 그것도 특정한 인물을 중심으로 사건을 전개시키지 않았을 때 발생하는 불가피함이었다고 생각할 수 없을까? 나아가 그들이 보여준 행위들이 설사 소영웅적이거나 영화적으로 보여졌다 하더라도 그들이 보여준 행위들은 그 시간 그 광주에서 실제 있었던 ‘사실’이라는 점이다. 수십만 광주 시민들의 행위를 사건 전개를 위해 몇몇의 인물들에게 집중했고 그 결과가 전형성으로 나타난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이 영화에 대한 아쉬움은 많다. 그러나 이 영화를 응원하고 싶은 이유는, 내가 이 영화를 좋은 영화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상황에 처한 이들의 비극을 이들의 시선에서 보고자 했다는 점이다.
언젠가 스페인내전을 다룬 영화인 <랜드 앤 프리덤>에 대한 리뷰를 쓰면서 이런 얘길 한 적이 있다.
“실화를 다룬 작품, 그것도 비극적 실화를 다룬 작품을 보는 것은 가슴 한구석이 불편해진다. 그것은 주인공들이 인지하지 못하는 파국을 우리는 이미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즐거운 순간 뒤에 도래한 그 파국을 알기에 그 안타까움이 더 커지는 것이다”
그리고 <화려한 휴가>를 보면서도 시종일관 그러한 안타까움 속에 영화를 보았다. 그것이 내가 이 영화에 몰입하게 된 결정적 이유인지도 모른다.
‘해방 광주’의 시간. 계엄군이 일시적으로 물러나고 시민군에 의해 자치가 이루어지던 그 며칠간의 시간을 이 영화는 종종 익살적으로 표현한다. ‘해방’이라 말했지만, 영화 속 시민군 대장의 말처럼 그것은 ‘고립’이었고 ‘유예’된 시간들이었다. 그러나 그 와중에서 발하는 익살들은 내게 짙은 페이소스를 던져주었다. 그들의 종말을 나는 인지하고 있으며, 실제 살아 숨쉬던 그들 역시 인지하고 있었을 것이기 대문이다. 그럼에도 인간이기에 웃을 수 있는 것이며, 그것이 인간의 강인함이다. 그들을 웃을 수 있는 사람으로 표현해 준 감독에게 감사함을 느낀다.
영화 속 여주인공 ‘신애’의 말처럼, 이들이 존재했다는 것을 이 영화가 기억하고 있고, 이들의 싸움을 이 영화가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난 이 영화를 지지한다. 난 이 영화가 더욱 더 화제가 되고 논란이 되었으면 좋겠다. 피해자들에게, 억울하게 죽어간 사람들에게 가장 억울한 것은 그 억울함조차 잊혀지는 것일 테니까. 가해자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행동을 기억하는 것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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